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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로 궁시렁 대다

[퍼옴]왜 미친년은 꽃을 머리에 꽂고 행복해하는가?

by cafrisun 2011. 7. 4.
우연히 눈에 보이는 제목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려다가 생각하게 만드는 글..
(전체글은 아래 출처로~)

출처 YES24 채널예스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1013&cont=6190
[희망의 인문학][강신주의 이토록 새로운 삶] 왜 미친년은 꽃을 머리에 꽂고 행복해하는가? - 중독 혹은 탐닉에 대한 단상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동구: 미친년들 특징 몇 가지 있다. 머리에 꽃 꽂았지?
이연: 안 이쁘나? 김 선상님은 이쁘다 했다.
동구: 그 말을 믿니? 미쳤네. 구릉에서 꽃 꺾어서 내려올 때 니 노래했지? 그때 죄다 니보러 미친년이라고 했다. 그 노래 한 번 더 해 봐라.
이연: (곧장 노래한다.) ‘마님 몰래 촌장님이 불러…… 내 가슴 만지면……아픈데 나아라……그믐밤 내 치마 걷어 촌장님이 만지면……아픈데 나아라…….’
(장진, 『장진 희곡집』「웰컴 투 동막골」)

1.
서양도 마찬가지지만 동양도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친 여자, 즉 미친년이 꽃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미친년은 들판에 가득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이 꽃 저 꽃 아름다운 꽃들을 한 아름 땁니다. 그 중 꽂기 좋은 꽃을 찾아 머리에 꽂습니다. 그리고 해맑은 모습으로 마을로 내려오지요. 작은 시골 마을이라면 미친년은 보통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남정네들의 공적인 성적 노리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성들의 거친 탐욕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저항을 했다가는 자신의 소중한 꽃들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성욕을 해소한 뒤 남성이 허겁지겁 사라질 때,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직 꽃들일 뿐입니다. 만약 꽃이 망가졌다면, 그녀는 남성에게 거칠게 화를 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꽃을 들고 해맑은 얼굴로 들판을 뛰어다닐 겁니다.

왜 동서양을 구분할 것이 미친년들은 이다지도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일반사람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주변의 조롱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미친년들이 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미친년들 대부분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어떤 외적인 충격과 직면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이란 참혹한 과정을 몸소 겪었을 경우를 생각해보지요. 부모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자신도 겁탈을 당한 불행한 여자가 있다고 해보세요. 그녀는 과연 세상을 직면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사건에 직면할 때, 일반 사람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중지시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 이상의 것이 밀려들어올 때, 정신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중지시키는 겁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비자발적인 반응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살아 있다면 정신의 기능은 다시 회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절로부터 깨어난 사람은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몽을 꾼 것처럼 깨어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냉혹한 현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경우 다시 기절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그래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아무리 해도 자신에게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아닥친 불행을 맨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우리 정신은 기묘한 전략을 씁니다. 그것은 주어진 불행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다른 대상을 찾아 그것에 마음을 주는 전략입니다. 영화를 본다든가, 여행을 떠난다든가, 아니면 친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힘들다면, 독한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검은 먹구름 사이에 얼핏 드러나는 광명을 찾는다고나 할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에 직면할 수 있는 힘, 혹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어서 그들은 불행한 현실을 가능한 한 행복한 현실로 바꾸려고 노력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한 현실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당연히 그는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여기서 미친년은 탄생하는 겁니다. 불행한 현실을 회피하려고 보았던 꽃만을 계속 응시하면서 사는 겁니다. 꽃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녀에게 거의 무(無)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마을 남정네들의 겁탈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꽃과 자기 자신이니까요.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반복될수록, 미친년은 더욱 미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친년을 완전하게 미치도록 만든 당사자들은 어쩌면 그녀의 상처를 헤아릴 생각 없이 그것을 악용했던 무지하기만 마을 남정네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2.
미친년은 들판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꺾기 좋아합니다. 그녀는 그 중 특별히 예쁜 꽃을 골라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에 꽂고 행복한 미소를 띄웁니다. 이런 애달픈 광경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본질 하나를 직감하게 됩니다. 미친년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행복하고 아름답게, 한마디로 말해 예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친년의 삶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소망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점에서 그녀는 사실 전혀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삶에 절망하여 허무주의에 깊게 젖어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지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도 『에티카(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에서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하는 것을 가능한 한 상상하고자 한다”고 말입니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과 뒤이어 일어났던 인격적인 모독과 성적인 폭력은 그녀의 신체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가 꽃을 따고 그것으로 자신을 장식하는 능동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친년이 꽃을 따는 행위는 무지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력한 상황과는 정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들판의 이름 모를 꽃들이 그런 무력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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